시인의 모니터는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시인의 모니터는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12.20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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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 이원 지음 | 민음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25년 동안 시를 써온 시인이 예술과 일상을 넘나들며 지난 궤적들을 책그릇에 담아냈다. 이원 시인의 <최소의 발견>(민음사.2017)은 시인의 시선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시인의 산문은 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시인의 민낯과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함축적인 시어 뒤에 있는 시인을 일상으로 끌어오는 장치랄까. 책 곳곳에서도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본문 중)

한 글자도 적지 못한 모니터는 시인에게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가득한 흰 땅’이다. 오로지 커서만 뛰는 그곳에서 시인의 언어들이 탄생한다. 시인답게 산문도 비유적이다. 창조의 고단함이 보이기도 불현듯 맥을 짚어보는 시인의 천진함이 보이는 듯도 하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 외에 언어나 그림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썼다. 특이한 점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기록한 마지막 장이다. 고(故) 김춘수 시인, 김혜수 시인, 안상수체의 안상수, 김행숙 시인, 이진명 시인 등 11명의 관찰자가 되어 그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일상의 작은 지점들을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이야기들이다. 시인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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