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시인 ‘시로 납치하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01.04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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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지음 | 더숲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시로 납치한다니 요즘 세상에 시로 납치당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싶어 지은이부터 살펴보았다. 류시화 시인이다. 시인으로 수필가로 또 좋은 시들을 소개하는 시 전도사로서 지은이의 명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납치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터다.

<시로 납치하다>(더숲.2018)는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부터 무명 시인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시를 선별해 엮은 시선집이다. 거기에 류 시인의 해설이 덧붙여져 시에는 적히지 않은 행간의 숨은 이야기를 듣고, 시의 메시지를 좀 더 쉽고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언어의 절제를 보여주는 독일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 ‘두 사람’을 소개하며 ‘함께’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쿤체의 사연을 덧붙인다. 쿤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연애시를 썼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국경을 넘어 한 여인과 400통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청혼해 사랑을 이룬 사연을 가진 시인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시를 다시 읽으면 시어들이 특별하게 다가와 일상에 자리한다.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라이너 쿤체 <두 사람>

책에 따르면 결혼 축시로 자주 낭송되는 시다. 배, 별, 폭풍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인생의 드넓은 바다로 의미를 확장하며 심오한 베시지를 전달해서다. 류 시인은 삶의 지혜는 파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배우는 것이라며 관계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라 해석했다.

꽃이 좋아지면 나이 드는 신호탄이라고 한다. 시가 좋아지면 지성의 완숙기로 접어드는 건 아닐까. 주옥같은 시와 함께 올 지적 즐거움을 기대해보아도 좋겠다. 새해의 시작 류시화 시인의 납치 제안에 기꺼이 응해보는 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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