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흰빛의 철학 보여주는 이용순 달항아리
비움의 미학, 흰빛의 철학 보여주는 이용순 달항아리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5.09.26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적 미... 27일~10월 15일 구구갤러리 초대전

심플함과 비정형... 현대적 미감과 시대넘어 조우
목동 구구갤러리에서 27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한가위 이용순 달항아리’ 초대전이 열린다. 작품 곁에 서있는 이용순 작가.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세상에 가장 순수한 색이 있다면, 그것은 흰색일 것이다. 흰색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조선의 백자와 달항아리는 바로 그 흰색을 빌려, 당대의 정신과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흰빛 아래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깊은 사유, 절제된 감정,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가 깃들어 있다. 바로 조선의 정신세계다. 이는 미니멀리즘적 심플함과 비정형의 현대적 미감과 연결되고 있다. 백자달항아리가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이유다. 27일부터 10월 15일까지 구구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이용순 작가의 달항아리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성리학은 단순한 정치 이념을 넘어 인간과 우주, 도(道)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이었다. 그 중심에는 ‘절제’와 ‘조화’라는 가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여야 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화려함보다 소박함을, 과시보다는 겸손을,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한 이유다, 했이러한 세계관은 예술과 일상 속 사물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그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백자다.

백자는 그 이름 그대로 ‘흰 자기’이다. 화려한 문양도, 강렬한 색도 없다. 대신 고요한 흰빛이 전체를 감싸고, 형태는 간결하며 균형 잡혀 있다. 이처럼 장식을 최소화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미학은 성리학적 이상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백자의 흰색은 청렴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무엇보다도 ‘비움’의 가치를 말해준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아내는 그릇, 그것이 바로 백자이고 그중에서도 달항아리이다.

달항아리는 조선의 미학과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다. 이름처럼 보름달을 닮은 둥글고 유려한 형태를 가진 달항아리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오히려 좌우가 약간씩 비대칭인 채로, 두 개의 반구를 붙여 하나의 항아리를 완성한다. 그 어긋남 속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조화와 생명력이 피어난다. 달항아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함’보다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불완전 속의 완전함’을 지향한다. 이는 성리학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 즉 인위적인 것을 지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려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백자와 달항아리에 담긴 흰빛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의 지향이자 사유이며, 시대의 자화상이다. 절제된 삶, 자연과의 조화, 비움에서 오는 충만함. 우리는 이 고요한 흰색 앞에서 말 없는 철학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가? 채움인가, 아니면 비움인가? 흰색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조선은 가장 깊은 말을 우리에게 건넨다. 이용순 달항아리를 통해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